안식을 누립시다.
본문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안식을 생각해보길 원한다. 안식(安息)을 직역하면 '편안한 호흡으로 쉬는 상태'를 뜻한다. 다른 말로 쉼, 휴식, 놀이, 여가(餘暇)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을 현대적 의미의 여가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생활 현장의 실천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 둘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마르바 던이 제시한 '안식'의 개념은 창조의 절정이며 창조 질서가 투영된 지속 가능한 삶의 중심적 위상을 차지한다. 하나님 스스로 창조의 완성으로서 일(창조)을 그치고 피조물과 더불어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선함, 기쁨)을 음미하고 축하하는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2001년 미국의 뇌신경과학자 마커스 레이클(Marcus Raichle)에 의하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할 때에는 뇌가 활성화되지 않고, 오히려 휴식을 취할 때 뇌의 활동이 증가한다. 그는 이를 '디폴트 모드(내정 상태)'라고 표현했는데, 뇌가 무엇인가 목적을 갖고 집중할 때에는 활동이 감소됐다가 쉬는 중에 다시 활동이 증가(뇌의 안팎에서 발생한 정보를 수집 평가하는 회로가 활성화)하는 일종의 기본 설정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의 코베타(Corbetta)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뇌의 '디폴트 모드(내정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파악하는 이른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이 발달한다. 이것이 발달한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더 나아가 이면에 숨은 동기까지 읽을 수 있다. 반면에 마음 이론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상대를 파악하기 때문에 일종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 현상'이 강화된다. ASD 환자는 뇌의 내정 상태 활성도가 현저히 감소하는 특징을 보이며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잘하지 못하고 관계 맺음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이러한 뇌신경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인간은 일하는 것보다 안식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뇌신경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먼저 쉬고 난 후 일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지난 4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경제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연 평균 노동시간이 1915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 중 4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OECD 36개국(콜롬비아, 튀르키예 제외) 가운데 한국은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칠레(1916시간)에 이어 노동시간이 가장 많았다.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OECD 국가 중 1위 수준이다. 1716시간인 OECD 평균 노동시간과 한국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또한 일하지 않을 때에도 지나치게 자기 개발에 시간을 투자한다. 이것은 연장된 노동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피로 사회》에서 '일종의 자기 학대이며 자기 착취'라고 지적했다. 규율 사회가 성과 사회로 전이되면서 긍정성 과잉으로 소진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이 '피로 사회'의 증상이라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강요되는 규율 사회가 부정성의 면역사회라면,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할 수 있어"라는 긍정 과잉의 성과 사회는 자발적 자기 착취로 인한 소진과 신경과민을 가져오는 비면역 사회라는 것이다.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가 아니라 고갈시키는 긍정성의 폭력으로 인해 더 많이 일하고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공허해지는 것이 피로 사회의 역설이다.
같은 맥락에서 강수돌 교수는 성과 사회의 경쟁에서 강자에 의한 폭력의 경험과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강자와의 동일시'를 생존전략으로 내면화시켰고, 이것이 일중독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현대를 성과 사회, 피로 사회, 일중독 사회로 진단한 바탕에는 자발적 노동의 극대화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신자유자본주의 세계화가 경쟁 사회를 강화시키고 여가의 상업화를 확대시키는 오늘날은 일과 쉼과 놀이의 균형과 리듬이 아니라 미국의 사회학자 줄리엣 쇼르가 주장했듯이 일과 소비의 악순환에 놓였다.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 Way Research)의 연구에 따르면 42% 목회자들이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을 한다. 이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모두 포기한 채 일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스미스와 존 패티슨은 그들의 저서 《슬로처치》에서 21세기 교회가 슬로처치가 되기를 권면하면서 스페인어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낱말을 소개한다. '케렌시아'는 '특유의 휴식 공간'을 뜻하는 단어로 '살아남은 자들의 휴식처'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기독교 사역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열심'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믿음이 좋다는 것과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진다. 엘리야도 열심이 유별했고(왕상 19:10), 여호와께서도 열심을 내셨으며(사 37:32), 바울은 성도들에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고 명하면서(롬 12:11) 자신 역시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섬겼다(고후 11:2). 그러다 보니 사역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탈진'한 목회자들을 만난다. '안식'(창 2:2-3)과 '쉼'(마 11:28-30)도 '열심' 못지않게 성경에 자주 언급되지만, 사역 현장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쟁과 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교회가 '안식'과 '쉼'을 선물해 주기가 쉽지 않다. 교회 성장이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목회자들은 더욱 쫓기면서 열심히 달려가고,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경주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 역시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에서 '쉼 없음'이 불안에서 유래하고, 여러 가지 공격 행위로 이어져 결국은 폭력을 낳는다고 보았다. 출애굽은 쉼도 없이 폭력으로 빠지게 만드는 바로의 시스템에서 언약의 신실함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인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애굽을 그리워하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이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쉼이 없음을 떠나 쉼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박하면서도 어렵다. 그래서 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을 가져오는 믿음의 실천을 '저항'이요 '대안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가끔은 모니터와 TV를 끄고 스마트폰과 카톡에서 벗어나 뇌를 '디폴트 모드(내정 상태)'로 바꿔야 한다. 또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과의 교제로 보내는 주기적 안식이 필요하다. 이 시간에 인간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의 계획을 상상하며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관점을 고려해 통합하는 이른바 '자기 투사(Self Projection)의 능력'을 회복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쉼을 통한 회복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