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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각을 가져봅시다.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4-06-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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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도시의 한 복판에 교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교회 바로 옆에 술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마다 떠드는 소리, 음악소리, 주정 부리는 소리가 예배당 안에까지 다 들려오는 바람에 예배를 드리기가 힘들었습니다. 참다못한 교인들이 술집이 이사를 가거나 아니면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게 해달라고 예배 때마다 합심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정말 술집은 기도대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술집 주인이 자기가 망하게 된 것은 교회가 술집 문을 닫도록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입니다. 드디어 재판이 열리고 교회 대표로 법정에 장로님 한분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로님은"우리가 기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그 기도 때문에 술집이 망했겠느냐"고 펄쩍 뛰면서 항변했습니다. 

한참을 듣고 있던 판사는 이렇게 판결을 했답니다."술집주인, 믿음 있음. 교회대표, 믿음 없음." 우습지만 생각해볼 이야기입니다.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한 것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눅10장 38절 ~ 42절 [마르다]와[마리아]두 자매 이야기는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의견에 왈가왈부하는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의 해답은 신앙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두 자매가 주님을 영접했다는 것과 주님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자매가 어떻게든 주님의 거룩하신 은혜 앞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신앙 고백과 믿음의 자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면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서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언니[마르다]에 반해 예수님 앞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마리아]를 보면서[마르다]에게는 동정이, [마리아]에게는 얄미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신앙적인 시각으로 두 자매가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동기와 자세는 다릅니다. 언니[마르다]는<물질>로써 예수님께 대합니다. 반면에 동생[마리아]는<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여인이 전혀 다른 각도이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이러한 시각을 바꾸어 놓는 예수님의 시각에 의하면[마르다]보다[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문제는 동기입니다. 고백의 행위 속에 들어있는 의미의 문제입니다. 즉 물질도, 봉사도 그 동기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나의 수고와 나의 희생과 나의 헌신을 제발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불순한 동기가 따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내 수고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음식 준비하는 

나의 이 수고를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해달라는 지나친 요구가 그 봉사를 희석시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그런가 하면[마리아]는 대접한 것도 없이 다만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조용히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여자들이 배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이 모든 환경과 전통을 뛰어넘어[마리아]는 가장 충실한 자세로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아봐 달라 요구할 것도 없고 기대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말씀에 대한 깨달음뿐입니다. 이런 동기로 오늘 예수님이 좋은 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보면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 둘 중에 누가 옳으냐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더 기뻐 하셨느냐는 겁니다. 만약에[마르다]도 순수한 동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알아봐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했더라면 그 나름대로의 칭찬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오늘 이 사건은[마르다]로부터 시작되었는데[마리아]에게서 끝이 

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들어 온 사람은[마르다]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품에서 사랑을 받는 이는[마르다]가 아니라[마리아]였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엇을 하든지 그<동기>와<목적>이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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