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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묻다, “6·25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
김형석 전 독립기념관관장,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6·25』 출간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026-07-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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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서울 종로의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카페온에서 김형석 전 독립기념관장이 신간 출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여수 국군병원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걸어온 한 역사학자가 던지는 질문이 울림을 주었다.

김 전 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6월 25일 출간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6·25 – 여수 국군병원에서 천안 독립기념관까지』에 담긴 자신의 삶과 역사관을 밝혔다.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그가 말하는 '끝나지 않은' 것은 전쟁 자체가 아니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총성은 멈췄지만, 그 전쟁이 남긴 기억과 의미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 하는 책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김 전 관장의 삶 자체가 한국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고, 낙동강 전선의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에 참전했다.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여수 제36국군병원에 입원한 그의 아버지 곁에서 김 전 관장의 어머니는 남편을 간병하며 경상도 부모를 둔 자식을 전라도에서 낳게 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6·25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 여정은 분단 국가의 그것이었다. 경상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사관학교 입학을 위해 광주에, 장교 복무를 위해 경기도에, 그리고 최종적으로 서울에 정착했다. 3년 전 천안의 독립기념관장직에 부임한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으로 여겼다. “왜 대한민국에서 국군 병원에 태어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라는 그의 말에는 깊은 신앙적 성찰이 담겨 있었다.

이번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학도병 출신 부친의 트라우마와 함께 성장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전쟁의 보편적 의미를 묻는다. 미시사(微視史) 방법론을 활용한 저자는 작은 가족사 속에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드러낸다. 산업화 이전의 기생충으로 상징되는 가난, 전쟁의 상처로 남은 정신적 외상, 분단으로 인한 세대 간의 고통이 모두 그의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김 전 관장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는 6·25 전쟁을 인간의 역사와 신의 섭리의 교집합으로 본다. 인천 상륙 작전, 흥남 철수 작전, 부산 수송 작전 등 당시의 군사 작전들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들이었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흥남 철수 작전 당시 라우 선장의 기록이다. 60명을 태워야 할 배에 1만 4천 명을 승선시킨 메리더스호는 2박 3일간의 항해 중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5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선장은 자신의 항해 일지에 “우리는 아무것도 못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다”고 기록했다. 이것이 바로 역사 속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신의 역사라고 김 전 관장은 증언했다.

그 기적 위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바로 제2의 키워드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자유를 지킨 것, 폐허 속에서도 일어선 대한민국,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선 한국 교회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 김 전 관장은 “교회는 총을 들지 않았지만 피난민을 품었고, 굶주린 사람을 먹였으며, 전쟁 고아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고 상기시켰다.

한편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는 그가 독립기념관장직에서 물러난 사건도 직접 다루어졌다. 2024년 8월 제13대 독립기념관장으로 부임한 그는 불과 6개월 만에 해임 통보를 받았다. 광복절 기념사에서 한 발언이 ‘뉴라이트’라는 정치적 낙인을 얻게 된 것이다.

김 전 관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광복절 기념사에서 “두 가지 시선을 모두 소개했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체 맥락과 무관하게 일부 표현만 발췌되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왜곡된 해석이 이루어졌다고 토로했다.

현재 그는 해임 무효를 위한 법적 투쟁을 진행 중이다. 서울고등법원은 2024년 5월 “해임은 부당하지만 행정적 혼선을 피하기 위해 모든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복귀하지 말고 국가가 월급을 보장하라”는 절충적 판결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 재항고가 진행 중이다. 그가 자조적으로 언급한 별명 '왕싸남(왕과 싸우는 남자)'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얻어진 호칭이다.

이 모든 배경 속에서 김 전 관장이 기독교 언론에 간담회를 개최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교회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

성경 곳곳에서 “기억하라”는 명령이 반복된다. 출애굽을 기억하고, 십자가를 기억하고, 부활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다. 신앙은 기억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면 역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억을 잃은 민족은 방향을 잃고, 기억을 잃은 교회는 사명을 잃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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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사회는 역사를 해석하는 전쟁 속에 있다. 건국을 둘러싼 논쟁, 광복의 의미를 놓고 벌어지는 이념의 싸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역사적 정체성을 물려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한반도를 흔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전 관장은 교회가 먼저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큰 건물이 아니라 깊은 기억입니다. 교회는 프로그램보다 먼저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은혜를 잊고, 너무 빨리 희생을 잊습니다. 잊지 않는 공동체가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의 말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 던지는 절실한 호소였다.

이번 출간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6·25』는 여러 부로 나뉜다. 1부는 6·25 당시 아버지의 경험담과 가족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한다. 2부는 기존의 정치·군사 중심 서술을 넘어 인간의 역사와 신의 섭리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조명한다. 인천 상륙 작전과 흥남 철수 작전 같은 군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기적의 역사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캐나다 소년병들의 이야기와 하버드 대학교 박사 과정의 청년 윌리엄 쇼의 한국 선교 헌신 같은 국제적 관점의 기록들이다.

3부는 독립기념관장 해임 사건의 전말을 객관적으로 기록한다. 취임 기자회견에서부터 광복절 기념사, 각종 언론 인터뷰와 국회 기자회견문까지 모두 담아내어 독자가 사건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철저한 학적 엄밀함을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비록 에세이적 형식이지만, 학술 논문 수준의 주석을 달았으며, 시대 검증을 거친 사료들을 기반으로 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초등학교 5, 6학년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다듬어졌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의 마지막 순간, 김 전 관장은 자신의 나이 70세를 언급했다. 6·25 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 70세에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구했듯, 자신이 70세에 독립기념관장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역사 전쟁을 끝내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해야 할 마지막 사명이라고 본 것이다.

비록 독립기념관장직은 내려놓았지만, 그가 펜을 들어 책을 낸 이유가 여기 있다. 법정에서의 싸움도 계속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의 싸움이라는 확신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가 자유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 한 문장이 바로 그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의 전부이자 핵심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6·25』는 단순한 회고록도, 역사 교과서도 아니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책임을 끝내기 위한 한 역사학자의 절절한 호소이며, 기억을 잃지 않는 공동체를 향한 신앙적 초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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