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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으로 일궈낸 김유봉 장로의 은혜의 스토리”
맨하탄 32번가의 기적 <뉴욕곰탕 이야기> 김유봉 장로 간증집 발간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4-06-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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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곰탕이야기>의 저자 김유봉 장로(왼쪽)와 그의 아내 박송현 권사. 

톨스토이 장편소설 <안나카레니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신앙의 계승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이어지듯 김유봉 장로는 김씨 가문의 아브라함이 되었다. 신앙이 3대째 계승되고 있다. 김유봉 장로, 박송현 권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손자 손녀가 모두 8명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명문 가정을 이루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이루신 믿음의 이야기, 신앙의 이야기를 많이 갖고 있는 가정이 진정한 축복이자 명문 가정이다.”라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유튜브 설교를 기억하며 그렇게 살기로 했다. 

저자는 29세 때 미화 160불을 들고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가서 숱한 고생과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고 이루었다. 입지전적 인물이 된 것이다. 뉴욕 32번가 코리아타운에서 ‘뉴욕곰탕’을 34년간 운영하였다. 김유봉 장로가 1947년생이니 올해(2024년) 77세의 나이가 되었다. 고희를 넘긴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인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8a448b2c519db5ceb420d8a0b12c782_1718930481_2039.JPG이제야 인생을 뒤돌아보면 ‘김유봉이 만난 하나님 이야기’가 핵심인 책이 바로 <뉴욕곰탕이야기>(부제 맨주먹으로 코리안 드림을 이룬 맨해튼 32번가의 기적)(김유봉 지음)이다. 마른 막대기같던 한 인간(저자 표현에 의하면 '접시닦이 깡마른 청년')을 담금질하여 성숙한 믿음의 대장부로 만드신 하나님 섭리의 기록이다. 저자가 만났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곁에 시퍼렇게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 어찌보면 김유봉장로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은 뉴욕곰탕이 문을 닫아 곰탕 맛을 맛볼 수 없지만 곰탕 맛을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맛을 아련히 기억할 것이다. 서민음식 “뉴욕곰탕 한 그릇 먹으러 가세” 곰탕 한 그릇 안에 김유봉 장로의 사랑과 배려와 나눔이 섞여 진한 국물 맛을 내며 빈 뱃속을 든든히 채우리라. 한그릇 곰탕으로 향수를 달래고 친구들을 만났던 그 곳 뉴욕곰탕은 미국 이민생활을 한 분들에게 전설(레전드legend)이다.

이 책의 추천서를 쓴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저자를 “진국곰탕보다 더 진국인 장로님”이라 했으며,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는 “평신도 장로로 교회 섬김과 교회 부흥의 파수꾼”이라 극찬했다. 기하성 총회장 강헌식 목사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함으로 얻어진 믿음의 열매가 무엇인지 꼭 발견하기를” 희망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Retire)

Re+Tire (타이어를 바꾸어 끼다)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다. 은퇴후 70세인 2017년, 49일간 국산차(산타페)를 타고 아내와 함께 미대륙과 캐나다를 횡단하여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여생을 미주 교포들을 위한 선교및 복지 사역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저자는 한식당주방보조로 미국생활을 시작하고, 1년 뒤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미국 비자를 취득하고 신앙의 길에 접어들었다. 아내의 권유로 뉴저지 한소망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서리집사, 안수집사를 거쳐 1988년 장로장립을 받았다. 이 책은 김유봉 장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김유봉 장로에게 베풀어주신 기적의 이야기이다. 이 간증집을 통해 김유봉 장로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김유봉 장로는 21세기 미국판 요셉이었다. 김유봉 장로는 접시닦기에서 세컨쿡으로 승진한다. 쉬는 날이면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여유를 가졌다. 경찰서 유치장에서도 있어 봤다. 요셉과 흡사한 면이 많다. 요셉에게 형통의 의미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인 것처럼 김유봉 장로에게 형통도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 그 자체였다.

저자는 미주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성공에 대한 정의를 말했다.

“성공의 의미가 물질과 명예를 크게 가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남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김유봉 장로는 아비가일같이 지혜로운 아내를 둔 다윗같은 사람이었다. 믿음의 배우자 박송현을 만나(맞선31일만에 초스피드결혼식을 올렸다) 신앙의 문지방을 넘었고 급기야는 평신도로서 영예로운 직분 장로로 임직을 받아 충성봉사했다. 부창부수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 김유봉 장로였다. 테이블 3개의 5평 곰탕집을 시작해서 뉴욕의 중심부 맨해튼 32번가 6층 건물주가 되다(1982년).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신앙의 결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교회 건축을 할 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지 않고 힘에 지나치도록 예물을 드렸다. 아마도 물질을 주신 이도,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물질에 자유롭고 초월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였다. 물질이 아깝지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고생하면서 번 돈을 기꺼이 교회건축을 위해 헌금한다. 미국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던 상황에서 교회건축 대지 구입과 성전건축에 150만불 헌금(한경직 목사의 설교 속 인물 황규빈 회장 이야기를 듣고 다짐한 꿈이었다)을 기꺼이 드렸던 장본인이다. 

곰탕집을 운영하면서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었다. 뉴욕곰탕집에 드나들던 손님이 수만 명이다. 104세로 소천하신 방지일 목사를 비롯한 조용기 목사, 김선도 목사, 김준곤 목사, 김장환 목사, 장경동 목사 뿐만 아니라 정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재계에서 정주영 회장, 구자경 회장, 연예계에서 패티김 씨, 스포츠계에서 프로골퍼 미셀 위 선수, 예술계 조수미 씨 등 사람들이 뉴욕에 오면 반드시 거쳐가는 방앗간 같은 곳이 뉴욕곰탕집이었다. 

주의 종을 잘 섬기는 장로였다. 한 때는 담임목사와 사소한 문제로 시험에 들고나니 말씀이 귀에 안 들렸다고 고백하면서 절대 주의 종과 대척점에 서면 안됨을 깨달았다. 다윗을 보라. 한 때 장인이었던 사울왕이 자기를 여러 차례 죽이려고 시도해서 실패했지만,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종 사울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다. 생사여탈권을 여호와께 맡겨버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은 하나님의 영역권 안에 있기에 인간이 판단하고 정죄할 것이 아니라 잘못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치리한다.” 주의 종을 극진히 대하며 섬기는 청지기였다. 

신앙의 원칙주의자였다. 뉴욕곰탕 6층 건물을 사고 세를 내놓더라도 술집과 노래방등 유흥업소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지켜야할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원칙주의자였다.

교회생활에서도 저자는 3가지, 봉사와 헌신, 그리고 순종을 지키려고 한다. 교회에서 무서운 성도가 입만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성도이다. 신앙생활은 몸으로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말을 적게 하든지 행동을 하던지 둘 중에 선택하라.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첫 걸음이다. 주일에는 식당문을 닫고 온전히 주일성수했다. 주말 매상이 평일의 2배 이상이라도 과감하게 결단을 했다. 실질적으로 타격이 컸지만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통로로 그 몇 배의 수익을 보장해주셨다.

‘고향길’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전도에 앞장 선 사도바울같은 사람이었다.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물질을 들여 전도책자를 만들어 무료배포했다.

순종으로 열매맺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처럼 김유봉 장로가 맨손으로 미국 땅에 온 것도, 믿음의 여인을 만나 교회에 나가게 된 것도 다 그 안에 순종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예수의 친히 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하여 야고보서를 많이 읽는 신앙인이었다. 

김유봉 장로는 미국 비자를 취득하고 신실한 배우자(평생 투철한 믿음으로 신앙을 이끌어 준 아내를 만난 것)를 만나 신앙의 길에 접어든 것 그리고 교회에서 귀한 장로 직분(1988년 42세)을 받게 된  점이다. 이 세가지 별을 통해 저자는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사랑하며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통로였다고 고백했다.

신앙의 경주는 완주해야지 중간에 멈춰서도 안되고 포기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면류관을 써야한다. ‘뉴욕곰탕’이라는 음식물을 통해 하나님은 경기도 여주의 한 소년을 전 세계인이 누비는 뉴욕 맨해튼의 거부가 되게 하셨다. 비단 김유봉, 박송현 부부의 역경의 기록인 것같지만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함께하심이다.

팔순을 눈 앞에 둔 저자에게 뒤돌아보면 모든 게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진행된 섭리였고, 그 때 그 당시에는 실패이었지만 진정한 실패가 아니었고 성공이었지만 진정한 성공이 아니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감사였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내 인생의 회고록이 아니라 신앙고백이다.” 덧붙여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더 아름딥디”고 했다.

/ 조동주 객원기자(여행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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