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분별 못하는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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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를 분별 못하는 백성(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은 구약 성경 요나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이 말은 ‘앞뒤도 모르는 멍청한 백성’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을 구하시려고 요나 선지자를 파송했지만, 그는 니느웨 백성을 싫어해,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된다. 결국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고, 그 속에서 진실한 회개의 기도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다. 그런데 막상 다시스에 도착해서 그 백성에게 회개를 외치니, 온 나라가 금식하고 뒤집어지는 통회 자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정작 선지자 요나는 그런 니느웨 사람들의 철저한 변화와 개혁을 은근히 시기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에게 12만 명이나 되는 니느웨 백성이 좌우를 분별 못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반세기 전 우리나라 신학계에는 <민중신학>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세계적 토착화 신학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 민중이 주체가 되는 교회라는 말을 했다. 그때부터 민중 곧 ‘백성은 항상 옳고, 백성은 항상 정의다’라고 우기던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영어에도 아예 「Minjung Theology」이라는 말이 사전에 나와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민중 곧 ‘백성의 판단을 항상 정의다’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부터 전적 타락(Total depravity)했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심이 천심이다’라는 거짓말에 모두가 속고 있다. 투표 수가 많으면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당선된 사람은 민심이라고 우긴다. 이렇게 언론이 민심을 조작하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니 좌우를 분별 못하는 머저리 백성들이 문제인 것이다. 어느 것이 정의고, 어느 것이 불의인지 알 것 없고, 자신들의 이권과 유익 그리고 자기가 속한 카르텔에 맞으면 된다는 수준 낮은 멍청한 백성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런 앞뒤를 구별 못 하는 백성을 지도한다는 선지자들의 꼬락서니는 더욱더 한심하다.
강단은 보좌가 아니고 말씀의 증언대이다. 그러니 제사장적인 직무에만 충실할 것이 아니라, 선지자적인 직임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한다는 오늘의 지도자들은, 목회 안보를 위해 언제나 교회의 거룩성만 강조할 뿐, 하나같이 중도와 중립을 표방하고 자리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다. 그리고 어떤 지도자들은 도적 사람들(?)의 모임을 은근히 지지하고 그 편에서 명예와 지위를 얻으려는 얄팍한 영적 지도자들도 많다. 그래서 바람 부는 데로, 물결치는 데로 처신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물레방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만, <예>는 <예>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크게 고함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파수꾼이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적이 가만히 와서 목을 따 가는데도 아무 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천지에 도적 사람들이 서로 짜고 대명천지(大明天地)에 투표를 조작해서 세상을 바꾸었다. 필자가 모스크바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사전 투표에 우체국이 큰 몫을 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에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빛의 속도로 도적질하는 기술을 좌우를 분별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어찌 알 수 있을까? 새로운 일꾼들 중에는 미 문화원에 쳐들어갔던 반민주주의자도 있고, 그들의 보스는 참으로 변신의 도사인 범죄 기술자로 알려졌지만, 어리석은 백성들은 된장인지, 똥인지 구별 못 하고 있으니, 지도자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지난 선거 중에 야밤 쿠데타를 일으킨 지도자들은 다시는 눈에 안 보였으면 좋겠다. 전직 총리란 어른도 무슨 노욕이 있었는지, 후보자를 돕기는커녕 슬금슬금 뒤꽁무니 치면서 은근히 방해를 놓는 꼬락서니를 다시 볼 마음이 없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이다. 교회의 머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천국 복음을 끊임없이 증거해야 한다. 교회는 자기 울타리를 높이 쌓는 것이 사명이 아니고, 복음이 구원의 핵심 메시지이지만 그 복음이 가정도, 세상도, 나라도 바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복음 주의 자들 중에는 정치 혐오증에 걸려 있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개혁주의자(Reformer)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위해 일해야 한다. 개혁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박사는 그의 경건의 실제(Practeik der Godzaligheid)에서 말하기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은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겁하게 예수 이름 팔면서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영적 전투를 포기하고 있는 미련한 백성들이여!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학교, 대신대학교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