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시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월드미션신문 기자
작성일 2026-07-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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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체제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 한가운데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가치관의 충돌이 극심해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방향 상실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한국 교회는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가. 최근 고신애국지도자연합 포럼에서 제시된 “운전할 때 속도보다 시선이 중요하다”는 통찰은,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영적 진단을 담고 있다.
문제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자는 결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위협과 소란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세속적 대응 논리에 함몰되기 쉽다. 교회의 공적 책임과 예언자적 사명은, 문제 자체를 넘어 그 문제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시선의 교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의 삶은 이를 증명하는 위대한 예화다. 18세기 영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노예무역은 당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거대한 악의 시스템이었다. 윌버포스는 이 거대한 불의에 맞서 무려 46년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의 동력은 정치적 야망이나 인도주의적 연민을 넘어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신앙고백에 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비난과 조롱, 살해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나 경제적 손실이 아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눈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평생에 걸친 헌신은 1833년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위대한 결실을 맺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생명 경시 풍조와 ‘낙태 약물 도입’ 논란은 윌버포스가 싸웠던 노예제만큼이나 심각한 영적 도전이다. 수정되는 순간부터 고유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태아를 의사의 재량에 따라 약물로 제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인간의 생명을 효율과 선택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반성경적 가치관의 극명한 발현이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연합이 “헌법적 의무 방기”라며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파수꾼의 사명이다.
교회의 목소리는 정치적 구호나 이익단체의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윌버포스처럼,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진리의 선포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며 그 책임을 엄중히 물으셨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에스겔 3:17-19)
한국 교회는 다시금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세상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며 속도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운전대를 쥐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며, 생명의 가치를 파괴하는 모든 악한 시도에 맞서 진리를 외치는 파수꾼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할 때다.
문제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자는 결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위협과 소란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세속적 대응 논리에 함몰되기 쉽다. 교회의 공적 책임과 예언자적 사명은, 문제 자체를 넘어 그 문제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시선의 교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의 삶은 이를 증명하는 위대한 예화다. 18세기 영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노예무역은 당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거대한 악의 시스템이었다. 윌버포스는 이 거대한 불의에 맞서 무려 46년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의 동력은 정치적 야망이나 인도주의적 연민을 넘어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신앙고백에 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비난과 조롱, 살해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나 경제적 손실이 아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눈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평생에 걸친 헌신은 1833년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위대한 결실을 맺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생명 경시 풍조와 ‘낙태 약물 도입’ 논란은 윌버포스가 싸웠던 노예제만큼이나 심각한 영적 도전이다. 수정되는 순간부터 고유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태아를 의사의 재량에 따라 약물로 제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인간의 생명을 효율과 선택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반성경적 가치관의 극명한 발현이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연합이 “헌법적 의무 방기”라며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파수꾼의 사명이다.
교회의 목소리는 정치적 구호나 이익단체의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윌버포스처럼,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린 진리의 선포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며 그 책임을 엄중히 물으셨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에스겔 3:17-19)
한국 교회는 다시금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세상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며 속도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운전대를 쥐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며, 생명의 가치를 파괴하는 모든 악한 시도에 맞서 진리를 외치는 파수꾼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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