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순교적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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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 2차 로잔 대회가 복음주의 자들이 모여서 로잔 대회를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조지 오티스라고 하는 선교 학자가 이런 충격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슬람권을 힘 있게 전도하지 못하고 가서 늘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순교의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가짜일지라도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말이에요. 거기에 자기의 피를 뿌릴 줄 알아요. 우리는 자살 특공대로 선발 되어 가지고 자기가 자살해서 알라를 위하여 이슬람을 위하여 죽겠다고 줄서있는 사람이 끝없이 서 있습니다. 우리 영적인 혁명에 중요한 원동력은 순교자들이 뿌린 피가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렇게 이슬람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외치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선교사로 거기 들어가서 다 숨어서 있지요. 그래서 숨어서 예수 믿으세요. 이렇게 하면 드러나서 죽을까봐 두려워서 예수를 바르게 전하지도 못하는 그런 종교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위해서 마음껏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보고선 아이고 웃기고 있네. 그래서 이슬람에 전도가 안 된다” 이렇게 진단을 했습니다.
진짜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자신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부활의 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지 않고 있다면 부활의 현재의 능력을 축복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다는 거예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난 다음에 제자들은 모두 다 절망해서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뿔뿔이 흩어졌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해서 그들을 찾아오자 희망이 다시 생겼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기도해서 성령 받을 때까지 있으라고 그랬더니 정말로 그 말에 순종해서 기도해서 성령 받을 때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으니까 부활의 영인 성령께서 그들이 마음에 소원하는 것대로 전에는 원해도 못했었는데 이제는 원하는대로 움직여지는 겁니다. 그래서 나가서 예수를 증거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다시 부활하셨다. 살아 나셨다. 외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게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내가 부활 신앙을 갖고 사느냐 내 삶에 흥분과 감격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고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증거 하는데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붙잡아서 너 예수 증거 하지 마. 더 이상 예수 증거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랬더니 그들이 전에 같았으면 네.......그랬을 텐데, 이제는 안 그래요.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할까,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나는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노라.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어요?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에 가능 했던 것입니다.
순교의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됩니까? 부활의 신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잡히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잡히기만 하면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기름으로 촛농으로 해서 경기장에 횃불이 돼 가지고 불 태워서 산채로 죽어갔잖아요. 살아있는 사람을 생 톱으로 썰어서 죽였어요. 죽은 시체 속에 쓰레기 곰팡이 굼벵이 구더기 우굴 우굴 대고 있는 그 시체와 싹 눈 코 입을 서로 마주쳐서 돌돌 묶어서 관에다 묶어서 그냥 그 안에서 썩어서 죽도록 만들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점점 많아져서 로마 제국을 기독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나는 천국 할렐루야! 죽음에 대해서 부활 신앙을 가지고 그들은 오늘 죽으면 즉시 천국, 부활에 대한 확신이 그들을 순교할 수 있는 신앙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는 날로 확장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나가서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워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이 나가서 외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 충만 받으니까 부활 신앙으로 무장 되어서 가득 차니까 나가서 외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그것이 살아 있느냐는 것니다. 다 그냥 대충 교회 다니면서 할 만큼 어느 정도 하고서 봉사 조금 많이 하면 그것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잖아요. 그게 아니라 내 삶의 자리에서 내 순교 신앙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 할 수 있는, 앉으나 서나 내가 살아 있는 어느 시간에서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그게 하라고 하니까 의무니까 교회에서 하니까 그게 아니라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자각 속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본질 안에서의 흘러나오는 토해내는 것이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진짜 부활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진짜 내가 부활 신앙으로 자신 있고 소망이 있고 죽음에 대해서 평안하고 오히려 담대하게 외칠 수 있고 그리고 이 땅에서 부활을 현세에도 축복을 경험하고 평강을 경험하고 죽음을 담대하게 이길 수 있는 그런 삶을 내가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 안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성령을 주셨거든요. 이제는 충만하냐의 문제입니다.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