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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를 막는 설교자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1-10-1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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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심리에는, 자신이 듣는 복음을 주변 친구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최소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라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욕구를 가장 방해하는 것은 뜻밖에도 설교일 수 있다. 이것이 많은 설교자가 가장 모르는 지점이다. 예컨대 신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저 설교가 좋아. 하지만 내 친구가 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 이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 전파를 종용해 봤자 위축된 심정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시지에 변증의 요소가 포함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설교 대상에서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을 제외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당신이 설교 중(굳이 설교가 아니어도 좋다. 소위 큰 모임의 메시지역시 같은 기능을 한다) 짤막하게나마 변증을 제공한다면, 청중 중에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들 역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느낄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여기 계신 분들 중 어떤 분들은 절대 진리를 말하는 것이 편협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생각을 재고해 보시기를 요청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그때 청중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다. 청중 중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맞아! 저 이야기, 우리 과 선배님이 들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몇 주가 지나면 그 선배가 회중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볼 것이다.

항상 청중 중에 무신론자나 회의론자가 몇 명씩 있다고 가정하고 설교하라.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위한 배려가 있음을 알게 하라. 그들과 기꺼이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 주라. 교회 내에서만 통용되는 특정한 용어를 지나치게 남발하지 말고, 비신자들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 심지어 청중이 좋아해도 절대 사용하지 말라. 청중은 당신의 조롱에 웃겠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우리 회사 과장님은 데려올 수 없겠는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경우 전도를 막는 것은 설교자다. 하지만 설교자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회의론자와 무신론자에게도 따뜻한 복음을 전한다면, 어느새 그들이 교회에 와서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도 저 교회에 가면 내가 질문할 수 있대라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볼 것이다.

모든 설교가 복음은 아니다. 심지어 성경의 모든 내용이 복음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복음과 복음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 성경의 여러 명령들은 복음이 아니다. 이 말을 설교 때 윤리적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윤리적인 명령을 선포해야 한다. 하지만 복음을 기반으로 선포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언약의 복과 저주를 말하는 신명기 28장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우리는 강해 설교를 해야 하니 본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드러내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으로 설교하기 쉽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합시다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이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설교이긴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설교는 아니다. 따라서 성경을 전하지도 못하는 설교가 된다. 왜 그런가?

여기에는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율법)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복음)이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렇다면 본문을 신실하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하라는 겁니까?”라며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과연 인간들 중 이 모든 율법을 지킴으로 복을 누린 사람이 있는가?” 아니,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이 율법을 다 지켰는데도 불구하고 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도 어기지 않았는데도 저주를 받은 사람은 없는가?” 있다.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예수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켰는데도 불구하고 율법의 약속한 복을 하나도 받지 못하셨다.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셨는데도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셨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분이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을 어긴 우리의 저주를 가져가시고, 그분이 복을 받지 못하심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셨다. 신명기 28장을 이러한 정경적 맥락과 분리하여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선포하지 못하게 된다. 도리어 다른 이방 신들과 똑같은 비즈니스적 거래의 하나님으로 말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이후에 그러니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 율법대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선포한다면, 교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바뀌게 된다. 많은 강단에서 이렇듯 복음에 근거한 율법을 선포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놀랍도록 신선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복음의 재발견을 통한 내적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누리는 복음을 말하게 된다.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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