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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와 한국교회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0-01-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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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강요는 일본이 동양평화론이란 구실을 내세워 내선일체와 황민화정책을 실시하면서 신도사상을 통해 일본 중심의 사상적 통일을 도모한 것이었다. 천황 중심의 절대주의 체제의 확립을 위해 정신적 결합을 위한 것으로서 마치 독일의 히틀러가 로젠베르크의 게르만 민족 우월성을 내세워 유대인을 학살하고 기독교를 독일 국민에게서 이반시키려 했던 것과 비슷하였다. 조선의 독립불능론, 실력미달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조선역사의 정체성론, 타율성론 등의 식민사관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궁극적 목표는 천황제를 시행하여 조선을 정신적으로 일본화 하고 영구히 식민지화 하며 또한 병참기지화 하여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군국주의 체제화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신사참배를 강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기독교 교세를 분쇄하는 데에 있었다. 총독부는 강제 병탄 직후에 ‘105인사건을 조작할 정도로 한국교회 안에 내재한 반일세력을 축출하려 노력하였다. ‘3.1운동때 교회가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후에도 교회를 민족운동의 소굴로 보고 탄압하였다. 1920년대 말부터 한국교회가 내세적인 신앙이 강해지면서 기독교계의 민족적인 정신이 다소 희미해져 가자 종교탄압으로 그 뿌리를 뽑아 제국주의 정책에 순응하게 하려 하였다. 일제는 대륙 침략과 동남아 진출을 앞두고 교회를 식민지화의 걸림돌이라고 여기고 그 대응책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신사참배를 더 강요하고 기독교를 회유, 탄압함으로써 교회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려 하였다. 황민화정책을 위한 한 방책으로 그 기본골격이 되는 신사참배를 한국교계에 강요하여 교계를 분열시킴으로써 힘을 약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회유와 강압 정책을 병행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신도는 비국교이고 국민의례라고 주장하는 술책으로 한국교계를 혼돈 시켰다.

신사참배 문제는 기독교계 학교에서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논란거리가 되었다. 초기에는 반대가 우세하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서는 19319월 주기철 목사를 중심으로 신사참배에 반대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런 반대 기류에 대응하여 회유와 강압으로 한국교회를 유인하는 한편으로 한국교회에게 시정방침을 하달하면서 탄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대세와 시대의 기류를 따르는 부류는 늘 있어 왔다. 반대 일변도이던 장로교회의 노회들의 태도가 바뀌어 평북노회가 193829일 비록 강압에 의해서 그랬을 것이지만 가장 먼저 참배를 결의하였다. 이해 9월 이전까지 전국 23개 노회 중에서 17개 노회가 참배로 돌아섰다.

신사참배를 적극 찬성하는 자들도 있었다. 일제는 평양기독교친목회라는 친일적인 단체를 이용하여 그들의 계획을 추진하려 하였다.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 여론이 우세하자 그 친목회에 속한 장로회 인사를 선정하여 일본에 가서 신사에 대해 살펴보고 한국교회에게 잘 말하여 참배하게 만들려 하였다. 회유, 설득, 강요 중의 첫 단계의 작업이었다. ‘평양기독교친목회회장인 오문환은 신사참배를 적극 반대하던 이승길을 포섭하여 김응순, 장운경 등과 193854일 도일하여 일본교회를 순방하고 귀국한 후에 일본의 국민은 물론 교인들까지도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인식하는 점을 내세워 신사참배의 정당성을 강조하였다.

19389월에 열릴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라는 지시를 하달한 일제 당국은 총회에 참석하는 23개 노회 총대들에게 가결하는 편을 들 것을 미리 주지시켰다. 반대여론에 앞장서 온 주기철, 이기선, 김선두 등은 미리 구금시켰다. 평양경찰서는 신사참배 가결안 각본을 짜서 각 개인에게 전달하고 동의까지 받았다. 평양노회장 박응률이 제안하고, 평서노회장 박임현이 동의하고, 안주노회장 길인섭이 재청하게끔 되어 있었다. 193899일 오후 8시 평양의 서문밖 교회에서 회집된 제27회 총회는 이튿날 회의 때 문제의 신사참배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회의장에는 사복, 정복 경찰관 수백 명이 배치되어 삼엄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총회장 홍택기는 를 묻고 나서 10여 명만 라고 대답했는데도 를 묻지도 않고 가결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이행하고 따라서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서 총후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이라고 공포되었다.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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