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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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중 가장 '무모한 작전' 중 하나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오마하 해변에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끔찍한 장면들이 쉴 새 없이 관객을 짓누르는 영화입니다. 노르망디 해안가는 말 그대로 시체들과 부상병들로 피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미 아군과 적군의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연합군과 독일군은 조국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일 뿐입니다. 병사들은 상륙정 안에서 공포에 휩싸여 떨고 있습니다. 어떤 병사는 배멀미로 토악질을 하고, 어떤 병사는 기도를 합니다. 드디어 해변에 닿은 상륙정의 문이 열립니다. 해변 토치카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뿜어낸 총알이 빨려 들어옵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해변에 한 발도 내딛지 못한 채 바닷물 속으로 고꾸라집니다. 물속으로 미리 뛰어든 병사들마저도 물속을 가르는 총알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병사는 머리를 관통 당하고, 어떤 병사는 다리가 잘리고, 어떤 병사는 잘린 자신의 팔을 끌고 갑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의 파도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버립니다.
미군 밀러 대위는 부하들과 함께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상륙임무를 완수합니다. 같은 시각, 전사자 통보업무를 진행하던 미국 행정부는 네 형제가 모두 참전한 라이언 집안에서 세 명의 아들이 이미 전사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막내아들도 낙하산으로 그 상륙작전에 침투되었던 것입니다. 비탄에 빠진 라이언 부인을 위해 마샬 장군은 네 번째 아들인 제임스 라이언을 반드시 찾아오라고 명령합니다. 그 특수명령은 이제 막 상륙한 밀러 대위에게 내려졌습니다.
밀러 대위는 일곱 명의 대원을 데리고 그를 찾아 나섭니다. 여덟 명이 한 명을 구하러 가라는 무모한 명령에 대해, 부대원들은 “도대체 세상에 이런 이상한 계산이 어디 있어!”라고 투덜댑니다. 그러자, 밀러 대위는 대답합니다. “라이언은 착한 사람일 거야. 우리가 구해야 할 가치가 있을 만큼.” 부대원들은 독일군 지역 깊숙이 들어가 전투를 치룹니다. 찾아가는 도중 동명이인의 다른 라이언을 만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몇 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부대원들은 과연 1명을 구하기 위해 8명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1명의 목숨이 8명의 목숨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가?”
드디어 라멜지역에서 문제의 라이언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라이언 일병을 찾기는 했지만, 불행하게도 마지막 전투에서 라이언 일병만이 살고 밀러 대위와 부대원 전원이 죽습니다. 밀러 대위는 죽어가면서 라이언 일병에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제발 잘 살아라!” 그들의 희생을 감사히 받으라는 말이지요. “오직 너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너는 살아났다. 그들은 더 이상 바칠 것이 없다. 그러나 너에게는 있다. 너는 그들의 희생에 걸 맞는 인생을 살아가라. 죄책감에 빠지지 말고 그들이 행한 일을 감사히 받아라.”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노인이 된 라이언 일병은 가족들과 함께 밀러 대위와 부대원들이 묻혀 있는 묘지 앞에 서있습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삶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노라고 울먹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전쟁 끝에 살아남은 당신은 과연 그 희생의 대가로「살아 남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는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바쳐진 전우들의 거룩한 희생을 과연 그대는 감사하게 받으며 살아왔는가? 지금이라도 그들의 희생을 감사함으로 받으라!!”
우리 주님은 나 하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기 위해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신 분입니다. 그리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 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자격을 따지셨나요, 무엇을 요구하셨나요?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 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냐는 말입니다. 이제 엄청난 희생의 대가로 얻은 나의 생명이라면, 그 생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의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내 생명으로 대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신한 생명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짜리로!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