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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반대의 이유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0-04-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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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c0cf84532045a4e84c08090bc28a53_1587093273_6128.JPG 1) 신앙적인 면

신사참배 반대자들은 초기에 선교사들이 전해준 성경중심의 청교도적 복음주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하게 만든 신앙적인 요소들을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들은 신사참배와 천조대신 경배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영적 간음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를 배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다.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절대복종이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 신사에 참배 하는 것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1계명과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셋째는 종말론적인 소망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탄압을 이길 수 있었다. 넷째는 하나님 말씀의 증인이 되려는 사명의식이었다. 반대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여겨 법정에서든지 감옥에서든지 그들이 처한 역경을 그 말씀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다. 다섯째는 순교에의 열정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사각오의 신앙이 있었다. 그들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최고 명령과 약속으로 믿고 소망하였다.

2) 민족운동적인 면

신사참배는 한국인의 황민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써 강요되었다. 따라서 참배를 거절하는 일 자체가 항일행위였다. 총독부 당국은 신사참배에 항거하는 자들을 국체변혁과 천황페하에 대한 불경죄를 범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기소하였다. 그런 저항을 종교를 앞세워 배일운동을 하는 가면 쓴 행동이라고 단정하였다. 한국교회는 항일운동의 맥을 이어 왔다. 일제가 한국교회를 핍박하고 탄압조치를 한 것도 교회가 민족운동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 거부를 이끈 동인은 신앙적인 데에 있음이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실로 항일의 동기도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사학계에서도 이런 저항운동을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보았다. 민족운동이 거의 고사되었던 당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의 배일사상을 지탱해준 것은 강력한 신앙적 양심이었다. 일제 때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행해진 설교들에서 출애굽기가 본문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교회는 종교입국의 동기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105인 사건이나 3.1운동 등의 여러 분야에서 항일 운동의 전통을 이어왔다. 기독교인들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나라도 사랑한다는 통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민족교회라는 불리기도 하였다.

주기철 목사의 항일정신은 잘 알려져 있다. 손양원 목사는 재판을 받으면서 일본의 국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천황의 정치가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역 하는 것이고, 그 자신은 일본의 정치 자체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으며, 국민들 사이에 중국과의 전쟁의 여파로 불만이 많아 천황의 통치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한상동 목사는 참된 믿음은 애국의 길이라고 술회하였다. 그는 실용학교 시절에 김성권 목사로부터 배일독립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 사상을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시절에도 이어갔다. 3.1운동 때에는 거사를 준비하다 발각되어 고난을 당기도 하였다. 마산의 문창교회에서 시무할 때에도 신사참배 문제로 40일 간 마산경찰서를 드나들며 수난도 당했고 결국 사임해야 하였다. 그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로 투옥되어 있던 19429월 그 담당관이 그에게 일본 국가를 위해 힘써 달라고 설득하면서 일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였다. 그는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을 단 한 마디만 했어도 석방의 기회를 얻었겠지만 끝내 말하지 않아 계속 수감생활을 하였다.

거창의 주남선 목사가 투옥생활 중에 간구했던 기도 제목들 중의 하나는 말세의 바벨론 우상제국, 곧 일본이 파괴되고 조선이 자주독립하게 되는 것이었다. 김두석은 신앙문제를 민족사상에 결부시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뗄래야 뗄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우리 민족에게도 나라를 주시라고 기도하였다. 이상과 같은 예들은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한 자들의 죽음을 무릅쓴 항거에 신앙적인 차원과 민족적인 차원이 융합되어 있었던 것을 밝히 보여준다.

 

최성균 목사(동백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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