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찬가
본문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유일하게 부활을 신앙적 교리로 강조하고, 이를 신앙의 시작으로 여기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온전히 부활하신 역사적 진실 때문이다. 많은 종교들이 기독교의 장점을 따서 모방하고 있다. 세계 3대 종교 중 가장 늦게 시작한 기독교가 가장 많은 나라와 신자들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한국불교가 한국 기독교를 가장 많이 모방하고 있다. 많은 승려들이 산을 떠나 도시로 내려와 개척교회처럼 빌딩에 세를 얻어 포교원을 세우고, 신도들을 심방하며, 찬송가처럼 찬불가를 만들어 부르고, 여름과 겨울에 수련회도 하며, 주일에 정기 예불과 어린이 학교도 진행한다. 또 80년대에는 기독교를 따라 여의도광장에 대형집회를 했고, 매월 불자들 조찬기도회도 하는 등 기독교 모방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많은 종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흉내 낼 수 없는 결정적인 사건은 부활신앙이다. 석가모니나 마호메트나 공자가 모두 죽어 부활하지 못하고 커다란 무덤만을 남겼으며, 그 무덤들을 참배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무덤이 없다. 빈 무덤일 뿐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색이고,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이며, 우월성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체험하고 변화 받은 바울은 이제까지 소중히 여긴 학식, 율법, 가문, 지위 들을 배설물처럼 여겨 버렸다. 그리고 평생토록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며, 서아시아와 유럽전도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4차례나 대 전도여행을 감행,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며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장렬하게 순교를 했다. 세속적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던 바울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만삭되지 못해 태어난 팔삭둥이로 자처하고, 갖가지 위험과 고난과 싸워가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유럽일대를 향한 복음의 초석을 놓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리스도의 부활신앙과 부활의 능력 때문이었다.
부활신앙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 불의를 이기는 정의의 능력, 거짓을 이기는 진리의 능력, 의심을 제거하는 확신의 능력, 절망을 극복하는 소망의 능력 등이 있다. 부활절은 단순한 하나의 기적이 아니다. 부활절은 거대한 전쟁이요, 반전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사망과 어둠의 세력을 뒤집어 업고, 사단의 문을 깨부수는 부활절 침공인 것이다. 부활절은 지금까지 죄와 사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인류의 역사를 생명과 능력과 치유와 회복의 역사로 회복시키는 기적인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죽음의 영역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요. 아무도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반전인 것이다. 인류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반전이 바로 부활절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필연의 역사다. 필연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운명을 거스르면 반드시 죽음이 뒤따라온다. 불행하게 인류의 운명은 ‘죽음’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죽음 앞에 빈부귀천이 없다. 어느 누구든 죽어야 하고, 죽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죽음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했고, 죽음으로 인해 역사는 깊고 어두운 밤이 되었다. 부활은 지금까지 죽음으로 운명 지워진 역사의 필연에 전쟁을 선포한다. 생명이란 새로운 필연의 역사를 만드는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 때에 나치의 승승장구에 쐐기를 박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낸 침공이다. 부활절은 죽음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전복시키는 날이다. 사망과 죽음이 지배하는 역사에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로 창조하는 날이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산다고 선언한다. 그렇다.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며, 인류의 죽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사흘 후 주일 새벽 주님의 부활은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의 위협에 겁먹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 다시 살아났다.
부활절은 사탄에게 치명적 패배를 안겨준 전쟁선포이자, 승리의 시작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계속 이기고 또 이길 것이다. 죽음은 성도들에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은 죽음의 역사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간들이다. 아무리 동장군(冬將軍)이 강하다 해도 봄처녀를 이길 수 없듯, 죽음이 아무리 강해도 생명을 이길 수는 없다. 사단의 머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죄와 사망의 권세는 힘을 잃었다. 영원한 생명과 영광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 부활절 아침에 소망의 노래를 부르자.
최성균 목사
동백지구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