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Janus] 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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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영어의 January는 라틴어의 Januarius(야누스의 달)에서 온 말이다. 야누스는 라티움 지방을 다스린 고대의 왕이 테베레강 서편에 위치한 자니콜로 언덕에 그의 궁전이였는데 백성들의 존경을 많이 받은 훌륭한 왕이었는데, 죽은 후에도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야누스가 두 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되는 까닭은 그의 이름, 야누스(Janus)가 어원적으로 문(라틴어 ianus) 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누스는 서로 반대되는 뜻을 가진 '시작과 끝', '입구와 출구' 를 동시에 의미했다. 고대 로마 동전에 주조돼 있는 야누스의 모습은 앞과 뒤, 안과 밖을 동시에 꿰뚫어 보고 있다. 오른손에 왼손에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문을 열어준다는 의미이다. 고대로마가 사비니족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 고전하고 있던바 갑자기 온천수가 아래부터 터져 나와 사비니족의 공격을 막아준 다. 승리로 끝난 전쟁후 포룸 로마나의 원로원 근처에 야누스 신전이 세워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신을 데려다가 이름만 개명시는 made in Rome, 라틴족 토속신 이었다고 한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는 농사와 법의 주재신이면서 성문과 가정의 문을 지키는 신으로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을 가졌다. 문을 지키는 신으로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이었다. 야누스 신의 모습이 앞면과 뒷면이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여,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이중인격자를 가리키는 나쁜 의미의 비유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야누스는 로물루스 시대에 의례용 출입구로 행운을 주는 상징적인 문으로 이용되었다. 로마 군대의 출정에 행운을 가져오는 것과 불운을 가져오는 것이 있었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아치 길은 야누스 게미누스로 로마 광장의 북편에 있는 야누스의 성소였다. 이 문들은 전쟁 때는 열려 있고 평화시에는 닫혀 있었다. 19세기 들어와서 양호한 건강과 영혼의 바른 태도라는 이중의 영역을 사회와 문화적인 범주에 의하여 해석되고 동시에 통합적 관리를 해석할때 흔히 쓰이는 말이다. 질병에 수반되는 시련이나 죽음과의 관계가 로맨틱함과 결합되어 문학과 예술로 표현 할때도 쓰이기도 했다. 성생활의 금기를 위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윤리적 차원이 건강과 의학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쾌락의 중용’이라는 도덕적 차원의 매커니즘으로 존재하고 모든 질병은 사랑이 변형된 것일 뿐이다 는 것이다. 사랑과 죽음은 무서움과 위대한 마술이다 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을 표현하는 그림 속에서 생과 사,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는 강렬한 색채로 표현되기도 했다. 19세기에 폐병은 ‘외양’으로 병을 앓고 있는 듯한 모습이 매력적인 모습이 은유적으로 교차 된 것이다.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부친이 생전에 저지른 문란한 성행위 때문에 선천적으로 척수 결핵으로 죽음에 이른다. 아버지의 성적 부도덕함이 아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는 것은 마땅히 그렇게 될 사실로 작품 전체에 투영된다. 서구 역사에서 성적인 품행은 어린이의 나쁜 행동, 성인들의 폐결핵, 노인들의 중풍 및 신경질환, 그리고 근력 퇴화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나병도 죄와 가장 나쁜 것, 즉 성적인 죄의 산물의 은유가 생성되었다.
예수님 당시나 요즘 현대에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안에서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의 두 얼굴이 너무 많다. 성경을 가지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면서도 자기중심적 자기목표를 가지고 자기 마음의 맞으면 아멘하는 철저한 자기중심적 신앙은 야누스의 두얼굴이다.
마15:장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하니까 예수님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셨다.
임성아 목사
·수원성민교회 담임 ·본지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