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본문
이 말은 유교의 경전인 예기의 곡례편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효를 중요시하는 유교에서 아버지의 원수와 결코 같이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고 한경직 목사님이 공산주의를 표현할 때 이 말씀을 늘 즐겨 쓰셨습니다. 직접 공산주의 치하를 경험하신 후 공산주의의 실체를 보시고 월남하셔서 모든 기독교 성도들에게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다양해짐에 따라 공산주의의 본질을 간과하는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무식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는 "하나님(신)이 없다"로부터 출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등한시하고 사랑과 포용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님께서도 공산주의의 면모를 이렇게 갈파하셨습니다.
"인간을 단순히 물질이나 경제적 조건으로만 보는 유물론적 사관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물질 이상의 '영성'과 '생명'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빵의 문제는 해결하려 할지 모르나 (오히려 이것마저 전혀 해결하지 못했지만), 사람의 속알(영혼)은 죽이는 길이다." 즉, 경제적 평등이 중요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인간의 주체성과 내면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그것은 참된 해방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공산주의는 미움의 철학이다. 미움을 가지고는 참된 평화를 세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계급 투쟁론을 기반으로 하는 '적대감'과 '증오'는 결국 파멸을 부를 뿐이며, 씨알(민중)이 스스로 일어서는 생명의 원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국가 자본주의에 불과하며, 그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우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공산주의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여 민중을 억압하는 구조가 과거의 군주제나 파시즘과 다를 바 없음을 꼬집은 것입니다.
그는 공산주의는 "목적(평등)은 좋을지 모르나 수단(폭력과 독재)이 틀렸고, 바탕(유물론)이 얕은" 사상이기에,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외적인 체제 변화가 아니라, 개개인이 깨어 있는 '씨알'이 되어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율'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좌파들이 그렇게 숭상하는 문익환 목사도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를 목사로 인정하지 않지만) 공부한 신학자이자 목사였기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무신론적 유물론'에는 동의하지 않고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는 공산주의가 가진 '물질 중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을 '악마화'하기보다는 기독교적 영성으로 보완하여 더 높은 차원의 공동체주의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동족 사랑)
우리 주위에는 생각 없이 친중친북 노선을 걷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그 단순하면서도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와 기독교 신앙은 결코 같이 할 수 없다는 단순한 논리가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이 없는 불교는 몰라도, 우리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그 출발부터가 다름을 다시 기억합시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그들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원수와 악한 우상을 구별합시다. 하나님은 우상을 용서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번 부활절은 좌파 목사와 성도님들이 회개하고 참된 영적 부활을 경험하는 부활의 아침이 되길 기도합니다. 샬롬.
노재환
승영교회/ROTC세계선교교회 담임목사
학교법인 승영학원이사장
전) 본지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