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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에 애국가와 우리 민요곡도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2-10-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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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찬송가에 얽힌 몇 가지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지금부터 약100여 년 전, 이 땅에 기독교 전파가 활성화되던 시기인 1894년 장로교 최초 찬양가와 1896년 감리교 최초 찬미가가 출간되었다. 그 후 262곡이 실린 최초 연합 찬숑가가 1908년에 나왔다. 물론 선교사들과 일본 인쇄회사를 사용해서 미국 등 해외 선교비로 출간되었다. 

이 찬숑가가 일제강점기 내내 대부분의 조선교회에서 사용되었다. 특기할 만한 일은 이 연합 찬숑가가 나오기 3년 전 즉, 을사늑약 직전, 1905년 우리 선조 조선인 윤치호, 김상만에 의해 광학서관이 발행한 15곡 가사 만을 모은 찬미가가 나왔다.

말하자면, 소책자이면서 보급형 최초의 순수 국산 간편 찬송가가 나온 셈이다. 이 찬미가 14장에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 가사가 실려있는데 스코틀랜드민요 ‘올드랭샤인곡으로’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해방되자 우리 찬송가도 개혁이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후 1949년 합동찬송가, 1962년 새찬송가, 1967년 개편찬송가에 이어 1983년 통일찬송가가 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발간되어 지금 사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1931년 감리교는 신정찬송가를, 1935년 장로교가 신편찬송가를 따로 만들면서 애국가는 자연스럽게 빠진다. 그러나 이 찬숑가에 실렸던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에 의해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 우승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응원가 스타일의 곡으로 발표된 곡과 만나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로 변모되었고 이후 해외에서 독립운동가처럼 불려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정식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 정신은 독립운동 시대에도 중심이 되고 있었다. 해방이 되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체제를 채택, 이북의 공산주의와 맞서 대한민국을 한국교회와 함께 건국하였다. 

일본패망으로 식민지통치에서 공백이 된 한반도 치안을 유지하고 일본군의 완전 철수를 위해 남한에 미군정이 시작된 지 3년 만이었다.

1년 후 1949년 미군이 이 땅에서 완전히 철수하던 해, 비로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찬송가의 근간이 된 합동찬송가가 계몽곡들과 함께 탄생하였고 1년 후 우리는 6·25를 겪으면서 눈물로 찬송가를 이 땅 방방곡곡에서 부르게 된다.

이처럼 정치적 시국 상황과 교파 간 갈등과 출판권 이윤 문제 등 아픈 역사도 있었지만, 우리 찬송가는 이날까지 전진해 왔다. “십자가 든든이 붙잡고” 등 시어를 “단단히 붙잡고”로 어법 중심 우선으로 개편된 것과 편찬위원들의 자기 곡 삽입 문제는 아직 숙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한편 통합 버전이 없는 미국 찬송가에는 우리 민요 아리랑 곡이 실려있는데 3,000대 1의 경쟁으로 아리랑 곡조가 선정되어 실려서 미국 사람들이 부르고 있다. 찬송가의 많은 곡이 각 나라의 민요나 베토벤 같은 유명 음악가들이 작곡한 곡을(64장) 찬송시에 붙여 싣고 있는데 다음에 나올 찬송가에는 우리 전통민요도 우리 애국가도 찬송가에 실리기를 기대해본다

시편 150편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샬롬.

노재환 목사

   ·승영학원이사장
   ·승영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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