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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리에 없습니다”라는 말,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시험하다

노형석 기자
작성일 2026-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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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원칙을 시험대에 올린다. 직장 등에서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상대방이 누구인지, 무슨 용건인지 알기도 전에 “지금 자리에 없다”고 말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이는 상대방과의 대화를 피하거나,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손쉬운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은 편의나 이익을 위해, 혹은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속임수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충격을 줄 만큼의 힘을 잃었지만, 양심의 문제를 제기한다.

진실이 대가를 치러야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쉽게 행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신을 좋게 보이게 한다면, 큰 희생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직함이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시험이 찾아온다.

직장에서 “지금 만날 수 없다”거나 “바쁘니 나중에 다시 전화 달라고 하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고, 대화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어 굳이 변명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이러한 일상의 작은 장면들은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진실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을 얼마나 쉽게 희생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의의 거짓말’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 등으로 바꿔 부르곤 한다. 이름을 바꿈으로써 그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듯하다.

책임의 정도를 구분하는 것과, 단순히 다른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거짓말을 용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소한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거짓이며, 따라서 죄가 된다. 물론 모든 거짓말이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동일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거짓말을 타인을 파멸시키려는 거짓 증언이나 심각한 해를 끼치는 속임수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전통에서는 죄의 정도를 구분하며, ‘사죄(venial)’와 ‘중죄(mortal)’의 거짓말을 구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임의 정도를 인정하는 것과, 단순히 다른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거짓말을 용납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작은 거짓말도 결국에는 거짓이며, 죄가 된다.
출처: Evangelical Focus  |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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