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독립 정신, 235주년 '보 카이망' 기념으로 되새기다
노형석 기자
작성일 2026-09-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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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91년 8월 14일 밤,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현 아이티) 북부 플레느 뒤 노르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인 보 카이망에 수많은 노예와 반란 지도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부두교 사제인 더티 부크만(Dutty Boukman)과 여성 사제 세실 파티망(Cécile Fatiman)의 지도 아래, 각기 다른 농장에서 온 노예들이 비밀리에 종교적, 정치적 의식을 거행했다. 이들은 '로아(lwa)'라 불리는 영적 존재와 조상들의 힘을 빌려 다가올 투쟁을 위한 보호와 용기를 구했다.
이 사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설탕과 커피 생산지였던 생도맹그에서 최초의 대규모 노예 해방 운동을 촉발했다. 노예들은 18세기 가장 강력했던 식민 제국 중 하나에 맞서 자신들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단결했다.
이 항쟁에는 섬에서 태어나 크리올어를 사용하며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예들뿐만 아니라, '에그리에(égrier)'라 불리는 노예선에 실려 아프리카에서 직접 끌려와 가장 힘든 노동과 잔혹한 형벌을 견뎌내면서도 아프리카의 문화와 언어, 부두교 전통을 지켜온 '보살(Bossales)' 노예들, 그리고 가정부, 요리사, 경호원, 미용사, 유모, 마차 운전사, 농장 감독관 등으로 일했던 노예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노예 여성들은 식민 통치자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혼혈 인구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농장주들은 노예들 간의 분열을 조장하려 했으나, 농장과 광산을 탈출해 산으로 도망친 '마롱(Maroons)'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며 저항 운동은 더욱 확산되었다.
출처: Global Voices |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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