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딸 넘어 한국 사회와 교회의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다 > 인터뷰 > 월드미션신문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인터뷰

HOME  >  뉴스종합  >  인터뷰

잃어버린 딸 넘어 한국 사회와 교회의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다
사단법인 실종아동찾기협회 서기원 목사

월드미션 기자
작성일 2026-02-11 11:51

본문

f674c84589438a8b9339d1287648c69c_1770778411_9321.jpg
1994년 희영 양 실종 이후 30년, 한 아버지가 세상을 바꾼 감동의 기록

무관심 속 법 제정 이끌고 제도 개선 투신… “교회는 가장 본질적인 사명에 응답해야”


1994년 어느 여름날, 평범했던 한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여덟 살 난 딸 희영이가 홀연히 사라진 그날 이후, 서기원 목사(사단법인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의 삶은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가 외면했던 ‘실종 아동’이라는 어두운 현실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었고, 낡은 법과 무관심에 맞서 싸우며 마침내 ‘실종아동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이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정 속에서 그의 깊은 신앙은 좌절의 순간마다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고, 이제 그는 한국교회가 시대적 소명을 감당해야 할 때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가출인’ 취급받던 실종 아동의 비극: 법 없이 홀로 싸웠던 20년


희영 양 실종 당시, 대한민국은 실종 아동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아보호법’이라는 법률이 있었으나, 이는 미취학 아동에게만 국한되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희영 양과 같은 8세 이상의 아동들은 실종되어도 경찰은 이를 ‘가출’로 분류했다. 서 목사는 당시의 암담했던 현실을 이렇게 증언했다. “아이가 제 발로 나갔다고 간주하여 수사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괴 사건까지도 가출로 처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하염없이 길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을 잃고 나서 서 목사 부부는 온 생을 걸어 아이를 찾아 나섰다. 사비를 털어 ‘수색 팀’을 꾸리고,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골프 연습장의 인연으로 MBC와 KBS 관계자들에게 딸의 실종 소식을 알려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 후 엄청난 제보가 쏟아졌지만, 지금처럼 체계적인 공조 시스템이 전무했던 탓에 제보의 진위를 파악하고 추적하는 일은 모두 서 목사 개인의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6개월간 전국을 헤매며 느낀 것은 ‘이 나라에서는 실종된 아이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뿐이었다”고 그는 당시의 좌절을 회고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딸이 혹시라도 시설에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전국 4천여 개의 시설에 일일이 편지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런 아이는 없다”는 형식적인 회신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두곳 뿐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한 가정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깊이와 더불어, 당시 우리 사회가 실종 아동 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아픈 기록으로 남아있다. 서 목사는 이 시기, “하늘도 땅도 우리 가족을 외면하는 것 같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붙잡고 버텼다”고 말하며, 신앙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품다: 소년소녀 가장 돕기 청년회


딸을 찾는 지난한 여정 중, 서 목사는 뜻밖의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소년소녀 가장들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고, 공원 육각정이나 버려진 폐차 속에서 박스를 깔고 잠을 자는 비참한 모습을 목격했다”며, 그 충격은 딸의 실종만큼이나 깊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를 개인적인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로 받아들였다.

”내 딸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깊은 영적 고민에 빠졌던 서 목사는, 더 이상 방황하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골프 연습장 건물의 1층을 개방하여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했다. 당시 흔치 않던 비디오 시설까지 갖춰 아이들이 마음껏 와서 놀고 쉬며 잠시나마 안전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노력은 곧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서 목사는 ‘소년소녀 가장 돕기 청년회’를 설립하고, 고향인 전북 남원 지역의 150여 명에 달하는 소년소녀 가장들을 체계적으로 돌보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 봉사 활동은 단순한 자선 행위를 넘어, 그에게 실종 아동 문제 해결을 위한 큰 틀의 사회적 연대를 꿈꾸게 하는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안겨주었다. 이는 훗날 그가 실종아동찾기 운동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법 제정의 감격과 현실의 벽: 교회에 던지는 준엄한 질문


2000년대 초반, 실종 문제가 서서히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서기원 목사님은 다른 실종 부모들과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장충체육관에서 이루어지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실종 부모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들은 “우리 아이도 찾아달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고, 서울대를 중심으로 모여 조직적인 운동을 펼쳤다. 서 목사님 역시 이 모임에 감사로 합류하여 법률 제정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은 2005년, 마침내 ‘실종아동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이라는 역사적인 결실을 맺었다. 김인선 의원(행정자치부 발의)과 고경화 의원(보건복지부 발의)의 주도로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서 목사는 법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지원책 마련에 집중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소관으로는 재정 지원 관련 법규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에 부딪혔고, 결국 보건복지부 소관 법률로 제정되면서 실질적인 ‘지원’보다는 ‘예방’과 ‘홍보’에 초점이 맞춰지는 한계를 안게 되었다.

법 제정의 감격도 잠시,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서 목사는 “농수산물 생산지 표시 위반 시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던 시절, 실종 아동을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고작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법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욱이 2007년, 그는 경찰청 포스터에 희영 양의 사진이 실리지 않은 이유를 문의하다가, 경찰청에 딸의 실종 서류조차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정 시스템은 과거의 무관심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와 경찰이 실종 아동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법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던 거죠.” 이 비통한 현실 앞에서 서 목사는 직접 딸을 ‘재실종 신고’하는 아픈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이 사건은 그에게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실종 아동 운동의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강력한 사명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허술한 법을 보완하기 위해 애썼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 경험을 바탕으로 실종아동찾기협회 임시 대표를 맡아 운동을 이끌게 되었다.


한국교회에 던지는 소명: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라”


서기원 목사의 지난 30년간의 헌신적인 여정은 단순히 잃어버린 딸을 찾는 개인적인 고투를 넘어, 실종 아동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한민국 전체의 인식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는 겉으로는 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현실 앞에서 한국교회의 더 적극적인 참여와 역할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실종 아동 문제는 단순히 한 가족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입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라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가르침이 아닙니까?”

서 목사는 한국교회가 ▲실종 아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고 ▲실종 피해 가정을 위한 심리적, 경제적, 영적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며 ▲정부 및 관련 기관과 연대하여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삶은 잃어버린 자녀를 향한 한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이 어떻게 사회 변혁의 불씨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이다. 동시에, “세속화와 물질주의에 물들어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한국교회가 다시금 그 사명을 회복하고 시대의 아픔에 응답할 것을 촉구하는 준엄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서기원 목사의 믿음의 발걸음이 지속되는 한, 이 땅의 잃어버린 아이들을 향한 희망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기사 공유하기
Total 61건 (1 페이지)
인터뷰 목록
기사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