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장애인의 구원사업, 더이상 미룰수 없습니다”
일생을 장애인 사역에 매진한 정상문 목사(국제개혁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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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장애인들을 위한 사역을 해온 목사가 있다. 사회복지, 후학 양성 이 모든 것이 장애인 선교와도 연결되어 있고 목회를 은퇴한 지금도 장애인 사역에 애정을 쏟고 있다.
국제개혁신학원 원장 정상문 목사는 오늘도 장애인 복음전차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하며 건강을 자부하는 비장애인(건강한 사람)들만 교회의 주인공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장애인에게도 눈을 돌리는 것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강조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직전 총회장인 정상문 목사가 평생을 걸쳐서 장애인 사역에 열정을 쏟아붇고 있는 이유와 향후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장애인 사역을 위한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시고 계십니다.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 4살때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원인도 알 수 없었던 병이었지만 지금 보면 ‘포도막염’이라는 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양잿물 때문에 말도 어눌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께서 김제 신풍교회에 부흥회를 오셨는데 당시에 제가 눈과 입을 열어주시면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습니다. 서원대로 신학을 시작했고 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한국 땅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몇 곳이나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인천에 농아교회를 개척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회를 나와 전남 무안군 죽전의 작은 비장애인 교회에 부임했습니다. 시골에 작은 교회에 뭐가 있었겠습니까? 산에 가서 나무해다 팔고 산나물로 끼니를 때우던 시기였습니다. 그 가운데 전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야학을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도 못 가는 청소년들을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죽전 재건 중학교’였습니다. 물론 법으로도 불법이고 미인가 시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많은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교회 재정도 나아졌고 교인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눈을 고침을 받았는데 다시 눈이 안 좋아진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눈을 고쳐 주고 다른 질병을 고쳐 주면 장애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결국 다시 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 전주 에바다 농아교회를 개척하고 이어 1975년 김제 YMCA 농아학교, 1976년 익산 농아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비장애인 교회와 신학원을 설립하게 되었는데 1989년 성남으로 이사해 교육사업과 복지선교사업을 열 기회를 주셨습니다.
- ‘장애인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명령이다’라는 말씀을 자주하시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지상에 오신 중심의 목적을 장애인의 치유와 해방을 위해 오셨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목적이 소외된 자의 회복과 장애인의 치유가 우선적임을 강조하시거나 연관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위 예수의 제자요 사도요 목회자인 오늘날의 목사들이 장애인 구령에 힘쓰지 아니하고 비장애인들에게만 (정상문 목사는 정상인을 ‘비장애인’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전도의 신경을 쓴다면 언어도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애인을 치유하며 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손 마른 병자를 치유한 사건이나 회장에서 18년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한 여인을 고치신 사건, 베데스다 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 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인 사람을 고치신 사건 등은 예수님께서 당시의 지배적인 의식보다도 장애인의 생명을 중요히 여겼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오늘날 장애인의 수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장애아도 있고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되며 교통사고와 기타사고로 인해 장애인의 발생 수효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교회 내에 부서 방을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장애인들끼리 예배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각 교단의 노회가 한교회씩만 설립하여 장애인 목회자를 초청해 지원한다면 400만 장애인의 구원사업은 일단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국제개혁신학연구원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사역지를 성남으로 옮기면서 정부로부터 보육교사교육원을 인가 받아 12년간 3000여 명의 보육교사를 배출했고 무인가 신학원이지만 선교신학원을 경영하게 됐습니다. 선교신학원을 시작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했던 부분중 하나가 여성 목회자 양성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기존의 교단들은 여성 목회자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교단이 여성 안수를 하지 않았고 복지 사역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여성 목회자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선교신학원을 통해 여성 목회자를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부터 여성 목사 안수를 시작했으니 당시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선교신학원은 매년 150여 명의 신학생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도에 신학원 명칭을 국제개혁신학연구원으로 개명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의 선교원(교회어린이학교) 교사와 원장을 배출하고 개교회의 많은 전도사와 목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특히 미자립 교회들에게 선교원 설립하여 어린이 선교는 물론 교회의 질적, 양적 부흥과 물질적 배려를 통해 목회자들이 편히 목회할 수 있게 했다고 자부합니다.
- ‘사단법인 착한사람들’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사단법인 착한사람들은 평생교육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5년에 법인 인가를 받아 산하에 여러 교육기관 및 단체가 합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복지사업 평생교육원 운영 등을 진행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그 중 한국복지문화교육원은 1994년에 설립해 학점은행제 대학과정을 운영해 수천명에게 전문학사와 문학사 학위와 함께 사회복지사를 취득하게 하여 개인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복지 시설 및 운영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 지원한 교육원입니다. 그외에도 보육교사 2급 과정, 상담심리치료사, 미술치료상담사, 에니어그램 강사반, 코칭 리더십 지도자 멘토링지도사 등 10여 과목의 민간자격증과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복지문화교육원은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400만 장애인들을 케어하는 특수직업으로 학력 무관하게 장애인의 집이나 직장까지 케어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현 교계에 70%가 작은교회 및 심지어 목회자의 생활비까지 충족못하며 임대교회는 월세마저 낼 수 없어 목회자 부부들이 막노동판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목회자 부부가 장애인 지원사가 되면 국가에서 60만~240만원 이상 저녁까지 근무하면 400만원 정도의 급여로 장애인 복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밖에도 장애인 집에 가서 가사활동지원, 신체활동지원, 사회활동지원을 도와주는 기관인 굿피플장애인활동지원기관이 있으며 사회단체인 새롬다문화복지협회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목사님께서 총회장으로 재임 기간 중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 측과 통합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에 대한 소감을 들려주십시오.
감사하게도 저는 예장개혁 교단에서 제106회 총회 당시 부총회장으로, 제107회 총회 당시 총회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총회장이 되고 나서 여러가지 교단 발전을 위해 고심을 해왔고 그 가운데 하나가 교단 통합 부분이었습니다. 모두가 예상하고 당연할 수밖에 없듯이 교단 통합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조정위원회가 통합안건을 가지고 왔을 때 반대의 목소리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통합을 위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데 바르다고 생각했고 모두의 뜻을 모아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양 교단이 합쳐지면 교단이 커질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보통 교단이 통합하면 나중에 다시 3 분열, 4 분열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교세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번 통합을 통해 교단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교단 목회자의 질적 성장이 그 목표였습니다. 또 총회 발전위원회를 구성해서 보다 안정된 총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수고하셨기에 저의 수고가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통합을 통해 예장개혁총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심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 추후 계획하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여건이 되는대로 서울 근교나 한두 시간 거리 내에 장애인 활동지원사교육원과 장애인활동지원기관을 하나 더 설립하여 뜻있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있는 목회자에게 선물하고픈데 이를 위해 장소 물색 중이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과거 장애를 앓았고 치유되고 장애인교회, 농아인교회를 7곳에 설립 지원한 경력을 토대로 전국 비장애인교회(정상인교회)들이 많이 설립해 주었으면 하고 그 일로 비장애인교회마다 장애인 부서나 교구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