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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장기기증 운동 개척자, 생명 나눔 실천하며 영면
순수 신장기증 1호 박진탁 이사장, 89세로 별세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026-09-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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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선구자인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명예이사장이 지난 9월 8일 새벽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 이사장은 노환으로 입원 치료 중이던 중 심정지로 영면에 들었으며, 생전 뜻에 따라 10일 오전에는 의학발전을 위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할 예정이다.

1936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난 박진탁 명예이사장은 1963년 한국신학대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생명 나눔 활동에 헌신했다. 1968년 우석대학교 병원(현 고려대학교 부속병원) 원목으로 재직 중이던 그는 한 행려환자를 위해 처음 헌혈을 실천했으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헌혈 운동에 뛰어들었다. 1969년에는 한국헌혈협회 창립에 참여했고, 1981년에는 최다 헌혈자 표창을 받으며 대한혈액관리협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박 이사장의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미국 이민 생활이었다. 국내에서 헌혈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매혈이 사라질 무렵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한 교민이 뇌사 상태가 되어 장기기증을 실천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혈액뿐 아니라 장기까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박 이사장은 즉시 귀국을 결단했다.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고통을 나누어 짊어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신념 아래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길을 개척하기로 다짐했다.

1991년 1월 24일, 박진탁 이사장은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신장 하나를 기증함으로써 생존 시 순수 신장기증의 역사를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장기매매가 성행하던 시대였으며, 주변에서는 그의 결정을 무모한 일이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내가 며칠간 고통을 견디면 한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데 모른 척 할 수 없다”고 묵묵히 기증을 준비했고, 결국 생명 나눔의 길을 걸었다.

같은 해 1991년 박 이사장의 신장기증 실천에 감화된 23명이 그의 뒤를 이어 신장을 기증했다. 이는 국내 장기기증 문화가 형성되는 첫 신호였다. 박 이사장은 이러한 반향을 체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1991년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했으며, 본부는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중심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까지 본부를 통해 969명이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했으며, 120만여 명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

1997년에는 박진탁 이사장의 아내인 홍상희 씨도 남편의 뜻을 따라 이름 모를 환자를 위해 신장을 기증했다. 이로써 부부가 모두 신장기증을 실천한 사례로 국내 기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며, 이는 가정 내 생명 나눔 문화 확산의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박 이사장은 단순한 개인적 기증을 넘어 국내 장기기증 제도 개선에도 주도적으로 앞장섰다. 그는 장기매매 근절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며, 2000년 국내에서 처음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정에 적극 참여했다. 또한 긴급 상황에서 장기기증 의사를 신속히 확인할 필요성을 인식한 박 이사장의 노력으로 2007년부터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희망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제도 개선은 국내 장기기증 운동을 보다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박진탁 이사장은 생명을 살리는 사업에 대한 헌신으로 다양한 공로상을 수상했다. 최다 헌혈 및 신장기증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으로부터 의인상을, 2011년에는 영곡봉사대상과 한신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수상들은 그의 생명 나눔 활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평가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박 이사장은 개인 활동을 넘어 시설 개원을 통한 구체적인 사역도 추진했다. 1999년에는 본인 부담금이 없는 사랑의 인공신장실을 개원했고, 2007년에는 혈액투석 환자들을 위한 제주 라파의 집을 개원했다. 이러한 시설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2014년에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의 14대 이사장에 취임한 박진탁 이사장은 2025년까지 약 11년 동안 본부의 수장으로서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활성화를 추진했다. 2015년에는 미국 로즈퍼레이드 LA장기구득기관으로부터 한국인 최초 생존 시 기증자 워커로 초청받아 국제 무대에서도 한국의 생명 나눔 문화를 알렸다. 2021년에는 본부에 1억 원의 유산 기부를 약정하며 장기기증 운동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위한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박진탁 이사장은 생존 시 신장기증 외에도 사후 장기기증 및 인체조직기증, 시신기증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고령으로 인해 시신기증 외의 다른 기증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다만 10일 오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함으로써 의학발전을 위한 마지막 기여를 이루게 된다.

박 이사장의 장례식은 본부 법인장으로 8일부터 엄수되고 있다. 빈소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 103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11시에 예정되어 있다.

박진탁 명예이사장의 별세는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을 하루 앞둔 시점으로, 그의 삶과 죽음이 생명 나눔의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개척한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길은 현재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으며,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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