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균 목사의 목회만사 - 덮어주는 사랑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굴도, 몸매도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머리숱이 너무 적은 게 탈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눈썹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여성의 아름다움이 절정이던 나이에 아예 눈썹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항상 눈썹을 짙게 그리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그녀에게 애인이 생겼습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애인은 깔끔한 매너와 친절한 사랑으로 그녀를 감동시켰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머리숱이 적은 것을 숨길 수 없어 남편에게 고백했지만 눈썹만큼은 연애시절부터 숨겨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를 감거나 샤워할 때마다 혹시 들키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했고 그 때마다 신경을 써서 눈썹을 그려 넣었습니다. 남편의 그 따뜻한 눈길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의 세월이 무사히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이 부부에게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한순간에 부도를 맞는 바람에 두 사람은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이 겨우 시작한 것은 연탄 배달이었습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면서 열심히 연탄을 날랐습니다. 하루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리어카를 밀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저 편에서 바람이 확 불자 그만 연탄 가루가 날아와 아내의 얼굴을 덮쳤습니다. 그녀는 눈물이 나고 답답했지만 얼굴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자신의 비밀이 탄로날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때 남편이 리어카를 한쪽에 세워놓고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수건을 꺼내어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사태로 인해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아, 이제 남편이 내 비밀을 알아버리고 말겠구나.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몇 년씩 자기를 속였다고 화내지 않을까’ 그녀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남편이 아내의 눈썹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나머지 얼굴만 깨끗이 닦아주는 게 아닙니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남편은 그 눈물까지 다 닦아주고는 다시 리어카를 끌었습니다.
사랑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10:12). 사랑은 허다한 죄까지도 덮어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어느 교회 가족찬송 경연대회에서 한 집사님이 찬송을 부르다가 가사가 틀렸습니다. 교인들이 깔깔대고 웃었고, 그 집사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얼른 자리에 돌아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어 목사님 가정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어떤 부분에서 가사를 틀리게 불렀습니다. 교인들은 다시 깔깔대고 웃었고, 사모님과 자녀들은 “왜 틀렸느냐?”고 핀잔을 주는 얼굴로 목사님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목사님이 과로로 쓰러지셨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장로님들이 목사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일기를 쭉 읽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7월 14일, 교회 가족찬송 대회가 있었다. 김 집사가 찬송을 부르다 틀려서 교인들이 다 웃었는데, 깁 집사가 너무 무안해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 다음 차례로 우리 가정이 찬송 부를 때 나도 일부러 틀려주었다. 다시 교인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때 슬쩍 김 집사를 보니 ‘목사님도 가사를 틀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작은 일로 한 영혼에 위로를 줄 수 있어서 기쁜 하루였다.” 그 일기를 읽고 장로님들이 모두 한 바탕 울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음은 남의 수치를 가려주려고 나의 수치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기 즐거워하고 오래 기억하고 들춰내려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이고, 남의 허물을 안 보려고 하고 금방 잊어버리고 덮어주려는 마음은 행복한 마음입니다. 허물을 보는 눈이 커지면 사물을 보는 눈이 작아집니다. 남의 허물을 찾으려는 안간힘은 나의 허물을 감추려는 안간힘입니다. 남의 허물을 잡았다고 해서 그가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허물을 잡는 과정에서 내가 패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그의 승리를 보면서 내가 승리하게 됩니다. 들춰내고 지적하는 목회보다는 덮어주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최성균 목사 (동백지구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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